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(문단 편집) == 사건의 상세 == || [[파일:external/dimg.donga.com/60633251.1.jpg|width=100%]] || || 피해자가 보낸 편지 || 잘린 부분까지 포함해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. >[[영등포역|영등포 역전]]에서 있는데 >(찾)아와 광주에 방이 있어 하룻밤 잠 재워주며, 먹을 것도 주고, 잠자고 >날이 밝으면 일자리도 소개시켜 주겠다며 유인하여 목포로 데려 >갔읍니다. 무슨 일인지 물라 물어보니 염전일이라며, 어렵지도 힘들지도 >않고 쉽게 일할 수 있다 . 3개월만 일하라 하며, 속여 소개소놈들이 >섬에 저를 팔아 넘겼읍니다. 이리하여 나가지도 못하고, 연락도 못 하게 >하고 철저히 감시망에 잡혀 있을 수밖에 없는 사항이 었읍니다. >염전에 와서 일한 지는 2012. 7. 05 ~ 2014. 1. 11 약 1년 >5개월 정도 일해왔으며 여름 에는 염전에서 소금내고, 소금 >담고. 대파청소, 막노동 등 여러가지로 일해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>소금 팔기위해 소금작업 다녔으며, 가을에는 벼농사(나락내기) 를 중간에 잘린 부분이 많지만 보이는 내용만 봐도 대략적인 경위 파악이 가능하다. 2008년 11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지적장애인 채모씨(48)는 일자리를 찾다가 무허가 직업소개 업자 고모씨(63)를 만났다. 두 끼니를 사준 직업소개 업자의 더 나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서 모 외딴 섬에 있는 홍모씨의 염전으로 가게 되었는데, 고씨는 30만 원의 소개비를 받고 채씨를 팔아넘긴 것이었다. 하루 5시간도 자지 못하는 와중에도 [[소금]] 생산은 물론 벼농사, 신축건물 공사, 각종 잡일, 집안일을 하면서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수년간 노예처럼 일하게 되었다. 채씨는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나무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폭행을 당했다는데 피의자의 주장과는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(후술). 선천적 시각장애 5급인 김모씨(40)는 2000년 과도한 카드빚을 지게 되자 가족들에게 짐을 안겨주기 싫어서 [[가출]]을 하고 10년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. 김씨는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서울 [[영등포역]] 근처에서 노숙 생활을 하며 지냈다. 그러다가 2012년 7월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이모씨(63)를 만나 먹여주고 재워주는 염전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 이씨를 따라갔다. 김씨는 홍씨의 염전에서 월 80만을 받고 3개월 간 일하기로 했다. 하지만 이씨는 홍씨에게 몸값 100만원을 미리 받고 김씨를 팔아넘긴 것이었으며 섬에 억류되어 채씨와 같은 곳에서 강제노동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. 김씨는 채씨와 함께 섬에서 빠져나오려고 세 차례 시도했지만 (김씨의 진술에 따르면) 그때마다 매번 마을 주민들의 전화로 발각돼 도망치지 못했다. 그때마다 매질을 당하고 홍씨로부터 심한 협박을 받게 되었다. 홍씨는 "한 번만 더 도망을 친다면 [[칼침]]을 놓겠다"라고 협박했다. 이렇게 김씨는 1년 6개월, 채씨는 무려 5년 2개월 동안 강제 노역 생활을 했다. 홍씨는 대체로 이 혐의를 모두 인정하였으나 '쇠파이프나 각목은 아니고 손으로만 때렸다'고 주장했다. 흉기를 사용하면 형법상 처벌이 더 강해지기[* 2인이상/흉기사용 두가지 중 하나만 포함해도 특수폭행죄가 성립하게 되며 두 개 다 포함하지 않으면 그냥 폭행죄가 된다. 이걸 노리고 주장한 듯] 때문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